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요, 그 본능이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곧 님비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런 발로다. 하지만 현대의 민주시민사회가 되기 전에는 국가 또는 자본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하는 행위들을 일개 지역주민들이 거부할 수 없었다.

1980년대까지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탓에 주민들은 가슴앓이만 할 뿐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다가, 1990년대에 접어들어 문민(文民)정부가 들어서면서 도미노처럼 퍼져나가게 된다. 통영도 마찬가지다. 통영 최초의 님비현상이라고 할 만한 사건은 용남면 두창산업폐기물 매립장에 관한 것이었다.

물론 님비현상이라는 것은 어떤 시설이 건설되기 전에 주민들이 집단적인 반대의사가 표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두창산폐장은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의 집단적인 의사표시가 폭발한 점에서는 님비현상의 사례가 되고도 남는다. 시민들이 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는 것에 거의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의미가 크다.

용남면 원평리 1만8000평의 부지는 1980년 9월부터 당시 통영군의 쓰레기매립장으로 이용되던 곳으로, 1983년 7월 산업폐기물처리업이 허가되고, 시설 설치가 승인되면서 산업폐기물매립장으로 사용됐다. 특히 두창산업이 대부분의 산업폐기물을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아예 ‘두창산업폐기물매립장’으로까지 불렸는데, 두창산업이 이곳에 폐기물을 매립할 수 있었던 배경에 당시 지역 국회의원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용남면 산업폐기물매립장은 1990년 말까지 통영군과 충무시에서 나오는 각종 쓰레기와 산업폐기물의 매립장으로 약 26만㎥의 각종 폐기물이 매립된 후 1993년 폐쇄 됐다. 지역주민들이 1990년부터 매립장 침출수 유출로 인한 어장피해 민원을 제기한 것이 폐쇄의 출발점이었다. 1991년 9월 당시 환경처가 주관한 오염피해조사가 실시된 뒤 1993년 산업폐기물매립장 허가가 취소되고, 매립지 복원의 책임이 있는 두창산업이 도산하면서 1990년대 후반까지 처리방안을 놓고 경남도 및 통영시와 주민간의 견해가 엇갈렸다.

2003년 두창산업폐기물매립장 안정화 사업비로 150억 원을 확보했지만, 선 피해보상과 폐기물 전량 이적처리를 요구하는 주민과의 대립으로 공사에 들어가지 못하다가, 2004년 2월 마침내 지역주민과의 합의하에 매립장 안정화사업에 착공했고 2006년 12월 공사를 마쳤다. 시트파일 연직차수공법으로 마무리했는데, 이는 흙막이나 물막이 목적으로 철제파일을 연속해서 지반 및 암반에 타입(打入. 땅속에 박음)해 차단벽을 형성함으로써 외부로부터 물의 유입을 차단하고 침출수의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지하연속벽체 형성공법을 말한다.

공사 마무리 후 최종적으로 복토를 해 그 부지 위에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체육시설을 설치했고, 2007년 1월 마침내 준공을 마쳤다. 축구장·배구장·농구장·게이트볼장·배드민턴장·체력단련장 등 생활체육시설이 설치된 이곳이 현재 용남면 생활체육공원이다.

두창산업폐기물매립장에서 유출된 폐기물 침출수가 인근 수산양식장에 피해를 주면서 20여 년간 지역주민들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했고, 결국 민관이 대화와 타협을 거듭해 산폐장을 체육공원으로 탈바꿈한 성공케이스가 통영의 첫 님비다. 물론 원인을 제공한 업자는 도산을 핑계(?)로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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