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뚝딱 나타나 소동을 피우고 홀연히 사라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동서고금 마찬가지다. 군사를 모아 훈련을 해야 하고, 주둔지를 설치해야 하고, 전투장비와 군량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또 보급해야 한다. 도로가 불편하고 교통이 미비했던 근대 이전의 전쟁 때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통영에는 통제영만 있는 게 아니다. 한산대첩이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만 남아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장소, 방금 지나간 그 장소, 그 지명이 역사의 현장이자 증거다.

산양읍 삼덕에는 당포성지가 남아있다. 조선시대 경상우수영 만호진이 있던 곳으로 경상우수영 8관 20포 중 한 군데였다. 한산도에는 제승당과 운주당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우수사로서,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제해권을 통제하던 곳이다. 백성들에게 안식처였던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뒤 지역민들은 자진해서 제당을 짓고 넋을 기렸는데, 그곳이 지금의 착량묘다.

충렬사는 이운룡 7대 통제사가 어명을 받아 1606년 건립한 사당이다. 조선말인 1868년 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이곳만은 보존됐다. 복원된 통제영지는 절정기의 규모에 못 미치고 충무공은 결코 이곳에서 통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세병관과 더불어 지금 도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봉평동은 봉수대와 해평마을을 합쳐 이르고, 당동(堂洞)은 착량묘 사당에서, 간창골은 세병관을 중심으로 관아가 밀집했던 데서 각각 유래했다. 영운리 삼칭이는 예전 삼천진(三千鎭)이었고, 선창골도 군수창고 집결지라서 붙인 지명이다. 산양읍 둔전마을, 원항마을도 마찬가지다. 한산도에는 그 어느 곳보다 이런 지명이 많다.

군수대장간이 있었다는 야소마을, 전선에 필요한 노를 제작했다는 너추리에서 유래한 여차, 거제도를 잇는 역참에서 유래한 역졸, 수군 진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작지, 전선정박지였던 입정포과 수군진지 진두, 군량미창고가 있었던 창동, 소금을 생산했다는 염개 등 한이 없을 정도다.

이순신 장군배 국제요트대회, 한산대첩기 전국배구대회, 이순신장군배 전국윈드서핑대회, 거북선음악회 등 통영에서 개최되는 수많은 대회나 행사에는 으레 이순신, 충무공, 한산대첩이 붙는다. 통영을 대표하는 한산대첩축제는 한산대첩이 있었던 때에 맞춰 더위를 무릅쓰고 개최된다.

올해로 58회째를 맞는 한산대첩축제는 한 여름 바캉스 시즌에 열리고, 지역경제 파급효과 논란과는 별개로 이미 지역민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한산식당, 충무공김밥, 이순신꿀빵 등 식당, 김밥가게, 꿀빵가게 중 그의 이름이 들어간 곳이 한 두 군데쯤은 있다. 통영은 이순신 장군이 있음으로 해서 그 존재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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