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토양은 정통 궁중음악을 들으며 자란 통영의 아들들을
동서양의 음악을 융화시킨 세계적인 음악가로 만들었다.
급변하던 근대, 통영은 문화의 변방이 아니었다

동양과 서양의 음악을 융화하는 작곡가로 이름을 떨친 음악가가 통영에 는 둘이나 있다. 한 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윤이상이다.
다른 한 분은 윤이상과 동급생이었던 정윤주다. 동피랑에 살았던 정윤주(1918~1997)는 어린 시절 세병관 학교 가는 길에 권번 앞을 지나면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귀기울여 들었다고 한다. 권번의 음악이 어린 정윤주의 마음에 동양음악의 바탕을 만들었고, 클래식에 심취했던 청년시절의 경험이 그의 음악을 이루게 된 것이다.


정윤주는 200편 넘는 영화의 음악을 작곡해 1960~1970년대 영화음악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1962년과 이듬해 열린 1회, 2회 대종상 영화제 음악상은 정윤주가 독차지했다.
정윤주는 1965년부터 3년간 영필하모니관현악단 단장을 역임하였고, 1990년에는 한국작곡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통영에서 자란 두 작곡가가 똑같이동서양의 음악을 융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동양의 음악이 늘 친숙하게 마음속에 내재돼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무형문화재 승전무 예능보유자 한정자도 세병관에 있었던 학교를 다니면 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승전무의 세계로 들어섰다.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는 승전무는 통제영이 없어질 때까지 교방청의 기생들이 이어오다가 통제영 폐영 후에는 통영예기조합(권번)에서 전통을 이었다.
문인풍, 한량풍의 춤이 흔한 한국 전통춤에서 씩씩하고 힘이 넘치는 북춤과 호방한 가사가 어우러지는 승전무는 통영의 독특한 전통문화다.


통영의 근대문화는 극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옛 남문 거리에는 통영 최초의 극장인 봉래극장이 있었다.
1914년 원래 일본인들이 전통극인 가부키공연장으로 지은 곳이지만, 오히려 일제에 항거하는 집회가 열렸던 역사적인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 극장인 단성사가 1907년이었던 걸 생각하면 통영에 문화가 얼마나 빨리 전파되었는 지를 알 수 있다. 신식극장뿐 아니라 영화사도 2곳 있었다고 한다.
봉래극장에서 무성영화를 상영하던시절, 막간에 어린 윤이상이 작곡한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정윤주의 무용곡 ‘까치의 죽음’을 처음 선보인 곳도 이곳이고 극단 벅수골이 첫 공연을 올린 곳도 이곳 봉래극장이다.
승전무와 오광대도 무대에 올라 통영의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하던 극장은 90년 만인 2005년에 철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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